
제1장: 모래성 위의 달리기
2024년 1월의 어느 늦은 밤, 서울 외곽의 20년 된 구축 아파트.
거실에는 낡은 냉장고가 '웅-' 하는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김민석은 식탁에 앉아 스마트폰 계산기 앱을 두드렸다.
월급: 430만 원 (세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160만 원
생활비 및 관리비: 200만 원
수아 학원비: 50만 원
남는 돈: 20만 원
"마이너스네, 또."
민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식탁 위에 놓인 미지근한 보리차를 들이켰다. 입안이 썼다.
안방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일곱 살 난 딸 수아와 아내 혜진이 잠든 모습이 보였다. 혜진은 결혼 전 "오빠만 믿어"라는 내 말에 환하게 웃던 여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마트 할인 코너를 맴돌고, 당근마켓에서 수아의 옷을 구하느라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민석은 대기업 10년 차 과장이었다. 남들은 번듯한 직장 다닌다며 부러워했지만, 실상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그가 지난 10년 동안 회사에 충성하며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사이, 세상은 미쳐 돌아갔다.
입사 동기였던 박 대리는 3년 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해서 강남 아파트를 샀다. 당시 민석은 "금리가 오르면 큰일 난다"며 그를 말렸다. 하지만 지금 박 대리의 아파트는 10억이 올랐고, 민석이 전세로 살던 이 아파트는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며 나가달라고 통보해 온 상태였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짜장면 값은 오르고, 집값은 우주로 가버렸어."
그는 '벼락거지'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자산이 있는 사람들과의 격차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져 버렸다. 성실함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능력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스마트폰 화면 속 뉴스 헤드라인이 그의 속을 긁었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 또 경신, 근로소득으로 내 집 마련까지 80년 걸려]
"80년이라니... 죽을 때까지 일해도 내 집 하나 못 가진다는 거잖아."
민석은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훅 들어왔다. 저 멀리 보이는 신축 아파트 단지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저 수많은 불빛 중에 내 가족이 맘 편히 누울 곳 하나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그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려다, 끊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며 다시 구겨버렸다. 돈도 없는데 담배는 무슨.
그때였다. 회사 후배 녀석이 단톡방에 링크 하나를 올렸다.
[후배 최준영]: 과장님, 이거 한번 보세요. 요즘 비트코인 반감기라고 난리던데, 이거 진짜 1억 갈까요?
평소 같았으면 "도박하지 말고 일이나 해라"라고 핀잔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달랐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을까. 민석은 홀린 듯 그 링크를 눌렀다.
화면에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낯선 이름과 함께, 비트코인 백서(White Paper)에 대한 해설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유튜버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가치가 왜 자꾸 떨어지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누군가가 화폐를 계속 찍어내기 때문입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계속 나오면 물컵의 물은 넘쳐흐르듯, 돈이 많아지면 돈의 가치는 똥값이 됩니다. 하지만 여기, 발행량이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제한된 화폐가 있습니다."
발행량이 제한된 화폐.
그 말이 민석의 뇌리에 꽂혔다. 그는 밤새도록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인플레이션, 중앙은행, 양적 완화... 그동안 그를 괴롭혔던 '가난해지는 이유'에 대한 답이 그 안에 있는 것만 같았다.
새벽 4시. 민석은 충혈된 눈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것은 투기가 아니었다. 이것은 탈출구였다.
"여보..."
자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민석은 작게 속삭였다.
"나, 방법이 생길지도 몰라. 아니, 찾아야만 해."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서점 앱을 켰다. 주식 차트 보는 법 따위가 아니었다. '화폐의 역사', '비트코인 스탠다드' 같은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것이 10년 차 직장인 김민석이 '회사'라는 거대한 쳇바퀴에서 내려와, '디지털 노마드'라는 거친 바다로 항해를 시작하게 된 첫 번째 날갯짓이었다.
이어지는 전개 예고 (제2장: 0.1 비트코인의 무게)
민석은 점심시간마다 밥을 굶고 비트코인 공부에 매진합니다.
아내 혜진에게 비상금을 털어놓으며 비트코인 매수 계획을 말하지만, 혜진은 "도박에 빠졌냐"며 격렬하게 반대합니다.
민석은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단순한 투자가 아닌 '우리 가족의 자산을 지키는 방주'라는 개념을 설명하려 애씁니다.
결국 어렵게 허락받은 소액으로 첫 0.1 비트코인을 매수하고, 이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비공개로 올리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