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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의 나침반 (Satoshi's Compass) 제2장: 0.1 비트코인의 무게

보이스월드88 2026. 1. 12. 22:16


제2장: 0.1 비트코인의 무게
회사 옥상, 1월의 칼바람이 불었지만 민석의 등은 땀으로 축축했다.
점심시간 1시간. 동료들이 맛집 줄을 서거나 카페에서 상사 뒷담화를 하는 동안, 민석은 편의점 김밥을 우겨넣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비트코인 스탠다드 (The Bitcoin Standard)』
책장 한 장 한 장이 그동안 그가 믿어왔던 세상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우리는 돈을 저축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녹아내리는 얼음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것이다.'
민석은 책에서 눈을 떼고 회색빛 빌딩 숲을 바라봤다. 저 수많은 건물의 주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화폐는 쓰레기라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화폐를 던져서 콘크리트(부동산)와 주식으로 바꿨다. 나만, 우리 가족만 바보같이 현금을 쥐고 있었다.
"더 늦으면 안 돼."
그날 저녁, 민석은 결심을 굳히고 식탁에 앉았다. 아내 혜진이 설거지를 마치고 로션을 바르고 있었다.
"혜진아, 할 말 있어."
평소와 다른 민석의 진지한 목소리에 혜진이 멈칫했다.
"무슨 일이야?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혹시... 잘렸어?"
혜진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가장의 실직이 가장 큰 공포인 삶. 민석은 가슴이 아려왔다.
"아니, 그런 거 아냐. 돈 이야기야."
민석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우리 비상금으로 모아둔 1,000만 원 있잖아. 적금 만기 된 거."
"그거 내년에 이사 갈 때 보태야 하잖아. 전세금 올려달라고 할 텐데."
"그 돈, 나한테 줘. 투자할 곳이 있어."
혜진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주식? 오빠 저번에 주식해서 300만 원 까먹은 거 잊었어? 이번엔 또 뭔데."
민석은 혜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비트코인."
순간, 정적이 흘렀다. 거실 시계 초침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미쳤어?"
혜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뉴스 안 봐? 그거 사기래. 도박이라고! 옆집 영수 엄마도 그거 했다가 반토막 났대. 우리가 지금 그런 거 할 처지야? 수아 영어 유치원은커녕 학원비도 벅찬데!"
혜진은 억울함에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민석은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 물러서면 평생 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혜진아, 나 좀 봐봐."
민석이 혜진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뿌리쳤다.
"당신, 내가 왜 매일 밤 10원이라도 싼 기저귀 찾으려고 인터넷 뒤지는 줄 알아? 우리가 가진 게 없으니까! 근데 그 귀한 돈을 데이터 조각에 태우겠다고?"
"아니, 이건 도박이 아니야. 혜진아, 제발 내 말 좀 들어봐."
민석은 낮에 준비했던 말들을 토해냈다.
우리가 왜 가난해지는지,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우리 월급을 갉아먹는지, 왜 부동산이 폭등했는지. 그리고 비트코인이 왜 '디지털 금'이 될 수밖에 없는지.
하지만 혜진에게 그건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나 무서워... 오빠가 변할까 봐 무서워. 그냥 우리 분수에 맞게 살면 안 돼?"
그 말에 민석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분수에 맞게'. 그 말이 족쇄처럼 느껴졌다.
민석은 무릎을 꿇었다.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딱 한 번만. 이번 딱 한 번만 나 믿어줘. 1,000만 원 다 안 쓸게. 딱 절반, 500만 원만 줘. 이거 다 잃으면... 나 평생 용돈 없이 살게.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주말마다 대리운전이라도 뛸게. 그러니까 제발... 나한테 기회를 줘. 우리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그래."
가장의 처절한 부탁. 혜진은 한참을 흐느끼다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지쳐 보였다.
"500만 원. 그 이상은 절대 안 돼. 그리고 이거 날리면... 나 진짜 오빠 안 볼 거야."
승낙이라기보단 체념에 가까웠다. 하지만 민석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새벽 2시.
스마트폰 화면 속 거래소 앱. 민석의 손가락이 떨렸다.
1비트코인 가격은 5,000만 원. (가상의 가격 설정)
50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건 고작 0.1 BTC였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냐.'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화면에 뜬 보유 자산: 0.1 BTC.
겨우 숫자 0.1이었다. 하지만 민석에게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난파선에서 발견한 구명보트였고, 캄캄한 동굴 속의 작은 촛불이었다.
"이제 시작이야."
민석은 책상 서랍에서 먼지 쌓인 웹캠을 꺼냈다. 그리고 유튜브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채널명: [월급쟁이 탈출기]
녹화 버튼을 눌렀다. 조명도, 마이크도 없이 형광등 불빛 아래 민석의 피곤한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10년 차 직장인, 김 과장입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오늘 저는... 아내에게 무릎을 꿇고 받은 돈으로 비트코인 0.1개를 샀습니다. 남들은 미쳤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이것이 저와 제 가족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요. 저는 오늘부터 그 과정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제가 옳았는지, 아니면 세상이 말하는 대로 제가 멍청한 도박꾼이었는지... 지켜봐 주십시오."
편집도 자막도 없는 투박한 3분짜리 영상.
민석은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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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창밖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 0.1 비트코인이 1 비트코인이 되는 날, 나는 회사 사표를 던질 것이다. 그리고 혜진이와 수아 손을 잡고 저 넓은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이것은 맹세였다.